주식실패사연

실화사연- 지인에게 빌린 3천만원(주식실패사연)

알고리즘포식자 2022. 8. 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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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유튜브 주식썰 용의꼬리 올라타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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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원 내외의 부자는 금면 성실로 이루어질 수 있지만 100억 대의 부자는 하늘이 내린다 한마디로 운빨인 것입니다.


주식으로 떼돈을 버는 경우 안전방이거나 터널 라운드 주식을 사놓고 자신의 운명대로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그럼 운이 있는 부자복을 타고난 사람은 부자가 되고 운바 없는 분은 좀 읽겠지요.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난 한의사나 의사보단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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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아픈 사람한테 이야기 보약이니 치이니 부왕이니 하며 사기성이 농구한 말이나 하는 사람보다 얼마나 정직하게 돈을 법니까?

오늘 돈을 벌어보려고 장사를 하려고 알아보러 다녔는데 만만한 게 아니더라요 그래도 난 주식으로 돈 버는 게 가장 쉽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진 죄는 돈 없는 집안에 태어나서 그런 데로 공부하여 서울 시내 상의 대학 나와서 너무 평범하게 살아와서 월급쟁이 생활하는 것이 유일한 죄입니다. 


첫 월급 받고 이 돈으로 서울에서 집 방카는 장만하겠냐 하는 생각에 서글펐습니다.


남산에 올라가니까 서울 시내 수많은 집들이 보이더군요. 


저 많은 집들 중에서 내 이름으로 내무 많아 편하게 쉴 집은 없더군요. 


대학 때는 맨날 반지야 햇빛이 안 보이는 단칸방에서 살았습니다. 


학교 다닐 땐 햇빛 들어오는 원룸에서 사는 게 소원이었는데 사람 마음은 간사한지 그거 이루니까 더 많은 걸 원하게 되더군요.


주식은 계속할 겁니다. 제 유일한 희망이거든요. 


그리고 마지막 세상은 다 사기의 연속 뻥의 연속입니다. 


제가 영업을 해보니 알겠더군요. 성공한 사장님들 회장님들 성공에서 사장님 회장님 되었지 실패하면 감방 갔을 겁니다. 
저는 이젠 주식 투자한 지 30년 가까이 되어 갑니다. 


그리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네 식구의 가장으로 살아가는 60대 중반입니다.


주식으로 고생하시는 분의 마음을 함께하면서 보다 더 나은 투자 문화를 만들고 싶고 또한 건전한 주식 투자의 분위기를 만들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으로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애기하려고 합니다. 


그냥 부담 없이 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먼저 저의 투자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제가 하고픈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제가 투자하던 90년대 초에는 지금처럼 hts나 ars 같은 것은 없고 주식을 투자하려면 먼저 증권회사에 가서 계좌 개설하고 추가와 매매는 증권회사에 전화하여 증권사 직원이 알려주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때 전 처음에 회사 다니면서 은행에 부은 개인 연금 저축을 과감히 해약하고 연말 보너스 등을 합하여 300만 원 정도를 가지고 모 증권회사에 가서 계좌 개설했습니다. 


처음엔 증권사 가는 것 자체가 가슴 떨리고 흥분되더군요. 


마치 인생을 건 경기장에 가는 것처럼 어릴 적 참으로 가난하게 살아온 저로서는 그 1년을 쓰지도 못하고 번 돈이라서
참으로 소중한 그 돈을 가지고 전쟁터와 같은 도박판으로 뛰어든 경우이니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렇게 계좌 개설하고 전 지금은 없어진 종목을 샀습니다. 


주머니라고 그때 8천 원 정도 하던 것인데 사실 빈 껍데기 회사로서 그 시절은 중소형주가 각광을 받았지요. 


그래서 매수한 것 같습니다.


아마 그때 투자하신 분은 잘 알겠지만 선도전기니 한신기계니 하여 쌍권총 박종규가 국민 투신해서 난리던 시절입니다. 


전 그래서 중소형주 중 그야말로 바닥에서 기다가 어느 날 갑자기 구세주가 될 것 같은 종목인 중원을 샀습니다. 


그때 참 증권회사 여직원 상냥하고 예쁘더군요. 


친절도 하고 지금도 이름을 기억하는 것을 보니 전 나름대로 아마 그때의 기억이 머릿속에 각인 된 것 같습니다.


그 이후 직장에서 시간 날 때 마다 증권사에 전화하여 주가를 물어보곤 했습니다. 


어디든 참으로 궁금하지만 왠지 증권사 직원에게 미안하요 직장 동료끼리 서로 돌아가면서 전화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소액 투자자가 경험하듯이 사고 보니 점점 주가가 오르기 시작하는데 전 바로 이것이 부자로 가는 길이구나 하는 생각에 밤잠도 설치고 증권 관련 책을 보게 되고 어느새 계좌는 회사에서 대출을 받고 형편이 어려운 형들에게 전세 얻는다고 빌린 돈 하고 해서 300만 원에서 3천만 원 정도 되었더군요. 


계좌에 액수가 올라가니 사실 직장 일은 부업이 되고 시간이 나면 주식 투자하는 직장 동료와 같이 주식 관련 이야기와 증권회사에 전화하여 주가를 알아보는 것이 하루의 일과 중 아마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증권사 여직원의 한마디에 우리 희노애락이 결정되고 저는 점점 주식 중독이 되어 갔습니다. 


그땐 아마 상한가 제안이 6% 정도 이었는데도 상한가 한 번 맞으면 이젠 부자된 기분이고 하한가 맞으면 쪽박이구나 하는 생각에 매도하기 바쁜 시절이었지요. 


종지가 많이 오르면 38선에서 인민군이 통질했다고 하고 많이 떨어지면 외인난도 확대한다고 하여 아마 정부에서 주가를 관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사실 그땐 투자하기 참으로 좋은 시절이고 어느 정도 매매 기법만 있으면 돈을 벌 수 있는 우리 주식시장의 후진성을 보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도 서점에서 증권 관련 책과 가족 중에 오래 투자한 경험이 있는 분의 조언으로 승승장구 했지요. 


나름의 정보와 그때 보기 힘든 그래프 보는 눈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으니 매수하는 종목마다 상승하더군요. 


그래서 직장에서만큼은 고수로 통하고 쉬시기 매매에 앞서 저한테 조언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주가가 상승하여 돈 벌어 좋고 고수로서 대우받으니 호명감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속으로 전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전 주식에서 불패론을 부르면서 남들이 모르는 돈 버는 기법을 알고 있는 것처럼 특별한 영웅심이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 97년도 상반기 증권가에서 아주 요상한 이야기들이 저의 귀에 들어왔습니다.


해외에서 우리 기업들이 돈을 차입해서 남미에 투자했는데 졸딱 망했다는 등 하여간 제가 모르는 이야기를 모처럼 증권사에 가면 자기네끼리 이야기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출장증 시간이 남아서 돌아오던 길에 증권사에 갔는데 그곳 증권사 직원들도 해외에서 좋은 은행이 20억 달러인지 20억인지 부도가 났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엇갈린 향후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 전부터 주가는 조금씩 빠지는데 저는 실상은 주식에 대하여 저 자신이 확신을 가지지 못한 시절이라 증권사 직원한테 물어보니 증권사 직원하는 말이 아마 잘 되겠지요, 하면서 경제부총리도 우리 경제가 기반이 튼튼하여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이젠 바닥이니 더 매수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동안 있던 돈으로 진도 물산을 몰빵하고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직원 중 나이가 많은 분 중에 집을 팔고 회사 사택으로 들어가려는 분이 집을 판 돈이 있다면서 저에게 앞으로 주식 투자하는 것이 어떠냐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그때 사실 많은 돈이라서 겁은 났지만 그동안의 어떤 나름의 고수라는 자부심이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자기의 책임 하에 나 같으면 지금이 투자의 적기로 주식에 투자하겠다고 조언했지요. 


그랬더니 태평양 패션을 이야기하더군요.


사실 저도 계속 관심 가진 종목이라 적극 추천하여 아마 그때 집 판 돈 90% 가까운 금액으로 몰빵하고 하루하루 기다리는데 계속 주식이 매수 이후 주가가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마 11월 중순 갑자기 국가부도 어쩌고 하더니 김영삼 대통령이 어쩌고 저쩌고 하던 니만 갑자기 산자부 장관이던 임창열 씨가 부총리가 되고 깡두슈인지 아는 사람과 무슨 조인식을 하고 붙어는 객장 가면 사람은 없고 전광판은 온통 하안가가 전부이고 단지 나라 망하면 이젠 라면이나 먹고 살아야 한다고 농심과 오뚝이 이런 종목만 상승하는 참으로 황당한 경험을 했습니다. 


사실 지금이나 황당하다고 하지만 그만 다 아시겠지요. 


월급 한 달의 경우 60만 원도 안 되는 놈이 3천만이 넘는 돈을 비치고 더구나 내 말에 집 팔아서 투자한 동료를 볼 땐 정말 가슴이 비어지는 것 같더군요. 


그래도 직장에 며칠씩 출장이나 휴가 내고 가끔 객장에 가면 텅 빈 분위기가 초상집 같고 참으로 처참하더군요. 


그때 한 번은 객장에 가니 객장 구석에서 한 할아버지가 울면서 기도하던 모습이 사실 가끔 생각이 납니다. 


아마 정년 퇴임하고 퇴직금으로 말년의 주식에 손댄 것 같더군요. 


어쩌면 주식의 무서움을 몸으로 체험한 셈이지요. 


그리고 계속되는 불면증과 저의 실패로 어머니는 화병으로 저 세상 가시고 워낙 무던하신 아버지는 그냥 저의 주식 투자 실패를 말없이 있었는데 아마 저의 연속된 실패 때문인지 얼마 전 암으로 저서상으로 가셨지요. 


전 그래서 그때 잠시 주식을 생각 안 하기로 하고 그냥 직장 생활과 술 그리고 운동에만 전념했습니다. 
주식을 계속하면 미칠 것 같더군요. 사실 전 다혈질이라서 이런 것 가슴에 담아주지 못하는 성미라서 도저히 자신도 없고요. 그래서 더욱더 직장에 술에 기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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